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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문
생명까지 드릴 수 있는 예배 데살로니가후서 1장 3-9절
▶설교예화영상 1 ‘목마른 사슴’ 상영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회로 향할 때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은 어떤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 아니면 “예배 빨리 끝나고 공부해야 되는데, 아니면 놀러가야 되는데, 아니면 친구하고 떠들어야지…”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로 발걸음을 옮기십니까? 오늘 영상을 보셨죠? 영상 속에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은 예배의 자리로 나아올 때 어떤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길까요? “또 예배를 드릴 시간이 돌아왔네. 제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라는 심정으로 가는 것일까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오늘 영상을 통해서 본 북한과 중국의 성도들은 생명을 내어 놓고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특히 북한의 성도들은 예배를 드리다가 발각이 되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서 죽을 때까지 강제 노동을 하거나, 또는 공개적으로 처형이 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교회들은 두 종류의 교회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가정 교회이고 두 번째는 삼자교회입니다. 가정 교회는 중국정부가 허가하지 않은 교회이고, 삼자교회는 중국정부가 허가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삼자교회는 중국정부의 통제를 받아서 제대로 된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를 설립해서 진정한 복음과 말씀을 전하고 진실된 예배를 하나님 앞에 드리고 있는 것이 중국 교회입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법적으로 삼자교회 외에 예배를 드리다가 발각이 되면 체포되어서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지고 많은 성도들이 그곳에서 생명을 잃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북한과 중국의 성도들을 생명을 내어 놓고 예배를 드릴까요? 왜 이들은 예배와 생명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예배를 사모할까요? 어떻게 이들은 예배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격려와 위로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환난과 핍박을 당하는 성도들을 향한 격려와 위로의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그리고 예배를 드린다는 이유로 많은 핍박과 환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만 예수님을 믿고 예배를 드린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초대 교회 성도들이 예배를 드린다는 이유로 체포되어져서 목 베임을 당하고 원형경기장으로 끌려가서 맹수들의 밥이 되기도 하며, 무기도 없이 검투사들에 의해서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어떤 성도들은 십자가에서 화형을 당하기까지 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핍박과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무엇 때문에 초대 교회 성도들과 북한의 성도들 중국의 성도들은 생명을 내어 놓고 예배를 사모하며 열정적인 예배를 드렸을까요?
오늘 성경 말씀은 믿음 때문이라고 답해주고 있습니다. 어떤 믿음일까요? 보잘것없는 나를, 죄인으로 죄를 짓고 살다가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 나를, 삶 속에서 죄 때문에 늘 불안하게 살아야 할 나를, 하나님이 너무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믿음, 이 믿음은 결국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아는 믿음입니다. 이들은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기에 생명을 내어 놓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압제자들의 핍박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크기에, 압제자들이 주는 고통과 고난 보다 하나님께 예배할 때 받은 은혜와 감격, 기쁨이 더욱 크기에, 압제자들이 주는 불안보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받는 평안이 더욱 크기에, 압제자들은 육신의 생명은 거두어 갈 수 있으나,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이 주시기에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친구들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어떤 변화가 나타납니까? 좋아하는 사람을 자주 생각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보고 싶고, 혹 좋아하는 사람과 만날 수 있는 날이 되면 가슴이 설레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기쁘고 행복하고 더 오랜 시간 같이 있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더 자주 만나고 싶어 합니다. 다른 일들이 있어도 좋아하는 사람이 만나자고 하면 모든 일을 다 제쳐두고 달려가기도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늘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보고 싶고,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가슴 설레고,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 기쁘고 행복하고 더 오랜 시간을 함께 있고 싶고, 더 자주 만나고 싶고,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먼저 하나님을 만나러 올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우리는 예배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늘 예배를 사모하고, 예배를 드릴 때는 열정적으로 드리며, 예배를 통해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좋아하는 사람과 약속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스킷드라마 ‘만나줬으면 됐지~’
만약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과 약속이 있다면, 우리는 그 약속이 있기 훨씬 전부터 그 만남을 기대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할 것입니다. 그 아이를 만나기 전부터 그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우리를 가꾸고 약속시간 몇 시간 전부터 나가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만나는 중에는 다른 생각은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 아이를 만나고 있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헤어질 때에는 아쉽고, 매일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마치 예배에 ‘나가준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오늘 영상을 통해서 본 북한과 중국의 성도들,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본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원하며, 그 어떤 핍박과 위협 속에서도 예배를 사모하고, 예배 속에서 늘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열정적인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친구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도 예배의 소중함을 느끼고, 열정적인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