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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문 죄로부터 영적 자유함을 얻으려면…
마태복음 11장 28-30절
▶ 설교예화영상 2 ‘짐’ 상영
이 영상을 보시면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의 모습 같습니까? 아니면 예수를 믿고 있지만 아직도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인가요? 사실은 둘 다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죄에 대한 문제는 단순히 불신자들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계속되는 도전입니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죄의 문제로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과거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으로 출연해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영화 ‘미션’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드니로가 동생을 살해한 죄를 뉘우치면서 신부를 따라 고원의 인디언들에게 가는 장면입니다. 과거 드니로는 노예상인으로서 그 인디언들도 살해하고 노예로 팔기도 했었습니다. 가장 압권의 장면은 자신의 무기, 갑옷 등을 그물로 싸서 그 고원까지 끌고 가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그의 죄의 짐, 삶의 무게일 것입니다. 인디언이 있는 곳에 다다랐을 때 인디언은 그의 등에 연결된 짐의 줄을 칼로 끊습니다. 그 때 그는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죄의 짐에서 해방된 기쁨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나눌 때 저와 여러분에게도 그러한 은혜가 임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많은 죄의 짐들, 누구에게, 어떻게 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1. 예수님의 초청에 임하십시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를 부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은 누구입니까? 세상 일로 지치고 힘든 사람입니까? 사업에 실패한 사람입니까? 입시에 실패한 사람입니까? 시련 당한 사람입니까? 친구에게 배신당한 사람입니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수고는 죄 가운데서 당하는 고통을 이야기합니다. 무거운 짐은 죄의 무거운 짐을 이야기합니다. 결국 자기 죄로 인해서 괴로워하고 죄의 짐을 지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죄의 짐으로 허덕이고 있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다 내게로 오라' 라고 초청하십니다. 누구에게 오라고 합니까? 바로 예수님께 나아오라고 합니다. 사람에게 나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에게 나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예수님께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그 분 앞에 나올 때 우리가 지고 있는 모든 죄의 짐들, 죄의 문제들은 단 번에 해결됩니다. 다른 종교들은 죄의 짐, 혹은 삶의 무게를 사는 동안 조금씩 없애 나가지만 기독교는 한순간에 그 짐의 줄을 끊어버립니다. 다른 종교들은 올바른 행실, 뉘우침, 참선 등을 통해서 그 무게를 조금씩 덜어내는데 반해 기독교는 예수님께로 나올 때 그 분께서 짐의 줄을 가위로 싹둑 자른 듯 없애주십니다. 여기서 '오라' 라는 말은 단순히 예수님 앞에 와서 서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나를 믿으라', '나를 영접하라', '나를 시인하라', '나를 앙망하라', '나를 먹으라', '나를 마시라', '문을 열고 들어오라' 는 모든 표현을 다 함축하고 있는 것이요 동일한 표현입니다. 죄의 짐을 지고 있는 자들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이 쉼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쉼은 어떤 쉼입니까? 구원의 안식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십시오. 그리고 그 모든 죄의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러면 온전한 구원의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의 멍에를 메십시오. 예수님은 쉬게 하리라는 선언 이후에 또 하나의 전제조건을 붙이셨습니다. 그것은 "나의 멍에를 메라"는 말씀입니다. 멍에는 무엇입니까? 소나 말에게 달구지나 쟁기 따위를 끌게 할 때 목에 가로 얹는 "ㅅ" 자 모양의 막대입니다.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짐 다 내려놓고 너희 마음대로 날뛰고 다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이 메어 주시는 멍에를 메라고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멍에를 매지 않은 소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멍에를 매고 나면 주인이 이끄는 곳으로 끌려 다녀야 합니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인의 의지대로 이끌림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서 예수님이 지어 주시는 멍에를 메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을 예수님의 주관, 다스림 아래 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철저히 복종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또 예수님은 자신에게서 배우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실 테니 예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그 지도하심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결코 예수님은 우리에게 죄의 짐을 벗어 놓고 네 멋대로 뛰어다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죄의 짐을 벗는 대신 예수님이 메어 주시는 멍에를 메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예수님이 지어 주시는 멍에는 우리가 메었던 죄의 짐에 비해 볼 때 무척 가볍고 쉬울 뿐만 아니라, 우리 주인이신 예수님이 멍에를 멘 우리의 고삐를 쥐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인도해 가십니다.
3. 성령으로 행하십시오. 우리가 죄의 문제를 해결함 받았다 할지라도 사단은 또다시 우리에게 죄의 문제로 도전할 것입니다. 갈5:16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성령 안에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육신의 정욕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곧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이 죄로부터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이미 지난 주 말씀을 통해 성령의 소금을 두어 화목하게 해야 된다고 배웠습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말씀과 기도에 더욱 전무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주님의 뜻과 음성에 귀 기울고 기도를 통해 우리가 주님과 끊임없이 교제를 나눌 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강하게 우리를 붙드실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과 기도를 소홀히 하게 되면 우리 안에 있는 영적인 권능은 약화되고 도리어 육적인 요소가 자라나 결국엔 또다시 죄의 짐을 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성령 안에서 행하는 삶을 사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날마다 죄로부터 영적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결론 지금 여러분을 억누르고 있는 죄의 짐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크건 작건 간에 주님 앞에 나와 모두 그 짐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주저하지 마십시오. 망설이지 마십시오. 그 짐을 그 분 앞에 내려놓을 때만이 여러분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멍에를 메고 그 분의 인도함을 받으십시오. 때론 그 길이 험하고 곤해도 주인되신 예수님이 우리 멍에를 붙들고 계심으로 우리는 안전할 것입니다. 죄의 도전들이 계속해서 나를 찾아오나요?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성령 안에서 물리치십시오. 성령 안에서 행하십시오. 두 번 다시 우리는 죄의 짐을 다시 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성경구절)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로마서 7:24)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요한계시록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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