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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of heaven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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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일201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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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예문

     

    더 나은 의

    본문: 마태복음 5장 17-20절

     

    신앙생활을 하면서 십계명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 내용을 다 암기하지 않더라도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지켜온 열 가지 계명’이라는 정도와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등의 사람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 또는 해야 할 명령 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하나님에 관한 앞의 4계명을 제외하고는 다른 고대문헌에서 나타나는 성문법들과 차이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신앙생활을 위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예수님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의 임함을 경험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나가시고 그곳에서 말씀으로 승리하십니다. 사역을 위한 준비가 마쳐지자 비로소 천국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시며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본격적인 사역이 시작된 것입니다. 갈릴리를 두루다니며 가르치시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십니다. 또한 각색 병든 자들을 고치십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일명 산상수훈이라고 불리우는 가르침을 들려주십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팔복이나 세상의 소금과 빛 이야기들을 들려주시지요. 그런데 그 뒤에 이 앞선 이야기보다 덜 중요시 할 수 없는(이 유명한 이야기에 가리워져 빛을 잃기도 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병들고 죄인인 연약한 자들을 중심으로 사역하자, 그들은 율법에서 멀리해야 할 자들에 가까웠기에 종교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일부의 무리들은 예수님을 기존 율법을 파기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울 자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계명을 중심으로 하는 율법을 없애러 온 자가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음을 분명히 선언하십니다. 그 완성이란 예수님의 제자들, 즉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들은 율법보다 더 나은 의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1절 이하에 등장하는 몇 가지 예는 바로 이것을 보여줍니다. ‘살인하지 말라’가 율법의 마지노선이었다면 예수님은 살인하지 않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살인의 전단계인 미움 즉 살인에 이르게 하는 분노조차 품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루에 몇 번이나 화를 내십니까? 크거나 작거나 상대방을 향해 미움과 분노를 품고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을 소유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율법의 완성입니다. 이야기는 계속 발전하여 43,4절에도 유명한 말씀이 등장 합니다.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이것이 기독교에 가장 위대한 사랑이지요. 예수님이 모범이 되어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율법보다 ‘더 나은 의’입니다. 우리가 지키는 십계명에는 이러한 ‘더 나은 의’가 요구되고 있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범하기 전단계에서 우리가 품게 되는 인간적인 마음들을 이기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는 바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살면서 화 한 번 내지 않고, 이상한(?) 상상조차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타당한 핑계를 대기도 합니다. 예수님이니까 그렇게 살아가셨던 거고 우리는 그냥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나만 이렇게 살 수 있단다가 아닙니다. 20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라고 분명히 그 대상을 우리에게 향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것은 단순히 위협하는 경고가 아닙니다. 정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만큼 무서운 사실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해답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더 나은 의’를 우리가 살면서 어떻게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겠느냐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 48절에서 ‘온전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말에서 온전함으로 해석되는 이 단어는 영어에서는 ‘perfect’ 우리가 아는 단어지요? ‘완전’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 하루의 삶 속에서 어떻게 완전하게 살 수 있을까요? 그것에 대한 대답을 예수님은 10장 28-30절(마태복음)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체가 해답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를 ‘더 나은 의’를 실천하며 살아가도록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렇게 살아가게 하십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 모범을 보이며 사셨고, 지금도 우리를 도우시는 그 분께서 우리에게 ‘완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친히 도우십니다. 친히 우리에게 생명을 내어주셨던 예수님만이 우리의 시시해보이는 하루를 완전하게 만드는 비밀입니다!

    얼마 전 영화(창의 끝)로 만들어져 화재를 모았던 ‘짐 엘리엇 이야기’의 후속 이야기나 나왔습니다. 그 아들 스티브 세인트 선교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영상을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예수님의 내어주심과 같이 자신들의 생명을 내어 준 선교사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생명을 내어준 것은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하루하루와 다른 삶을 살았던 어느 위대한 실행가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 그러나 예수님과 연합한 삶을 살며 그 사랑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 부족을 변화시키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전세계에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전도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나를 통해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이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멀리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복음이 그렇게 우리에게 왔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더 나은 의’를 실천해 나갈 때, 우리가 원하는 그곳에 전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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