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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용 문서화) . 설교/예문 Vision의 차이 요엘 2장 28절, 사도행전 2장 17절 영상을 통해 만난 ‘두 친구의 대화’의 대화는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나눌 수 있는 내용이죠? 우스갯소리로 ‘한 시간동안 드라마를 시청하고, 드라마 내용을 3시간 동안 대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신기한 일이죠. 한 시간의 내용으로 3시간동안이나 친구들과 대화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니 말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의 사연과 음악들이 다음 날 학교에서의 화제거리 였습니다. 지금도 마찬 가지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공통된 소재가 대화의 중심에 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영상의 ‘두 친구의 대화’처럼 말이죠. 두 친구의 대화에서 느낄 수 있는 몇 가지 특징들을 한 번 살펴볼까요? 먼저 두 친구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언어를 한 번 상기해 보세요. 국어사전에서 찾아보기 힘든 신조어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죠? 정체불명의 외계어를 사용하고 있어요. 메신저와 문자를 쓸 때 편의상 사용했던 표현들도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화의 주제와 언어들에서 보는 것처럼 TV. 인터넷이 우리의 일상을 상당히 많이 지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인터넷과 TV는 우리의 가치관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 한 예로 두 친구가 ‘동성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동성애는 분명히 ‘죄’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두 친구가 대화하는 것처럼 미디어 속에는 수많은 동성애의 소재로 한 드라마, 영화, 소설, 공연 등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아주 매력적인 동성애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하구요. 공연 문화의 중심지인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는 '게이 공동체'라 불리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동성애가 문화 속에 뿌리 내리도록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동성애자들은 조연으로 출연하였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캐릭터였습니다. 큰 거부감 없이 극에 등장하다가 이제는 동성애를 전면으로 내세운 공연과 영화 등이 큰 흥행을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문화는 조금씩 사람들의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두 친구가 가족과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먼저 강희의 여동생이야기를 생각해 보세요. 한 참 옷차림에 민감해지는 사춘기에 접어든 것 같은데요? 자기에게 어울리는 옷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조건 유행에 민감한 모습이에요. 패션잡지에 등장하는 모델들처럼 옷을 입으면 그만큼 멋있어 질 거라 생각하는 모습이 귀엽죠? 그렇지만 이런 모습이 여러분에게도 있지 않나요? 얼마전 한 자매가 드라마 여주인공 흉을 보는 것을 봤어요. 자세히 들어보니 ‘코디가 안티’다. ‘연기를 발’로 한다. ‘성형 미인’이다. 그래서 전 그 자매가 여배우를 무척 싫어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에 그 자매가 한 참을 흉보던 여배우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오더라구요. 그래서 속으로 한 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미의 기준이 여자 아이돌들로 바뀌어 가고 있지는 않나요? 이처럼 미디어는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수민이가 형과의 있었던 에피소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수민이가 형과 크게 싸운 것 같은데 그 발단이 인터넷 게임에 있었던 것 같아요. 뜨거운 형제애보다 게임을 향한 열정의 온도가 더 높았던 것 같네요. 얼마 전 인테넷 게임에 빠져 갓난 아기를 방치하고 끝내 목숨까지 잃게 만든 부부가 법정 처벌을 받게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인터넷 게임의 중독도 상당히 심각한 수준입니다.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 가는 것 뿐 아니라 나의 성품까지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순간적으로 형에게 험한 말을 하고 화를 내게 만든 것은 수민이의 평소 성품이 아니에요. 게임에 빠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험한 욕설이 나오는 경험을 하기도 해요. 게다가 폭력적인 게임을 하다보면 그 강도는 더 심해지겠죠. 자~ 두 친구의 대화를 정리해 볼까요? 미디어는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고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빠지다 보면 우리의 언어, 생각, 성품까지 변화시키게 됩니다. 심각한 것은 성경적 가치관과 반대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미디어를 장악하고 사람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사단의 의도는 크리스천들의 비전을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비전’은 ‘보는 것’과 관련된 다의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시야’와 관련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사물을 보는 것에 연관이 있는 것이죠. 다음은 ‘환상’이나 ‘상상’, ‘예지’ 등을 가지는 것과 관련이 있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실제로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여 보는 것이죠. 마지막은 텔레비전, 영화 등의 영상을 가리켜 ‘Vis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뜻을 연결해 볼까요? 우리가 TV나 컴퓨터의 영상(Vision)을 보면(Viosion) 우리가 미래를 바라보는 환상(Viosion)'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죠. 즉 우리가 자주 보는 것은 생각을 바꾸고 비전도 바뀌게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 하신 후 승천 하시면서 한 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성령을 우리에게’보내 주실 것이란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은 몇 십일 뒤에 실현되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은 베드로가 기쁨에 차 요엘선지자의 말씀을 사람들 앞에서 외쳤습니다.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사도행전 2장 17절)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시면 하나님 나라를 향한 이상과 비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의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이상을 보고 살아가야 합니다. 자녀, 젊은이, 늙은이는 모든 세대를 말합니다. 그리고 모든 세대들은 예언, 환상, 꿈을 가지게 되는데 이 모든 것들은 일치하는 것입니다. 미디어의 채널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 눈으로 바라보아야’합니다. 모두가 같은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열방을 향한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세상 끝 날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의 말씀은 요엘 선지자가 먼저 했던 말씀입니다.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요엘 2장 28) 크리스천의 박해가 심했던 초대 교회 공동체는 요엘의 말씀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이상을 꿈꾸었습니다. 그들의 믿음과 비전을 흔들리게 하는 순간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붙잡았던 것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도 박해와 탄압은 아니지만 ‘미디어’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흔들고 비전을 바꾸려고 합니다. 미디어의 공격이 심한 이때에 우리 공동체에도 요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꿈꾸어야 할 비전은 어떤 세계관에 근거하여야 하는지 심각히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고민은 여러분에게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한 세대가 지난 이후의 기독교는 미디어에 잠식당한 것이 아니라 미디어를 잠식한 공동체의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Viosion)’ 하나님 나라의 '환상(Viosion)'을 향한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이상(Vision)'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비전은 차이가 있습니다. 미디어와 문화에 영향이 아닌 성경과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을 통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