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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눈물 | 설교의 배열 | | 설교자의 스토리텔링 설교 | 영상설교 | 설교자의 구연 설교 | | 설교의 도입부는 구연으로 처리되고 영상을 통해 주제와 관련된 갈등을 고조시킵니다. 설교는 다시 핵심 문제와 해결을 제시하는 구도로 이루어집니다. 영상이 설교의 중간에 위치하므로 영상 자체가 설교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 | Sermon action (바이블 스캔과 연계됩니다.) | | 설교 시작 전 Free Note를 나누어 줍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자신의 느낌대로 노트를 채우도록 합니다. 형식은 자유입니다. 설교 요약, 흥미로운 내용만을 메모 하는 것, 낙서, 그림 등 자신이 원하는 무엇이듯 상관없습니다. 다만 약속할 것은 설교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 ● 본문 : 누가복음 15장 11-32절 #1. Bible Stroy 1 : 돌아가는 둘째 아들 | *스토리텔링 기법 *본문의 설교는 이야기 자체를 따라가면서 스토리텔링을 통해 이야기를 더욱 극화시키고 긴장감을 고조시켜 회중에게 전달한다. 이를 위해서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과 갈등을 드러낼 것이다. 첫 번째 인물은 갈등과 사건을 만들어낸 두 번째 아들의 시점이다. 이때에는 전체적인 줄거리를 소개할 뿐이고 주제는 감추어둔다. |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어버린 것’과 관련한 3가지의 비유 말씀이 나옵니다. 첫 번째는 ‘잃어버린 양’, 두 번째 ‘잃어버린 드라크마’에 대한 비유입니다. 3번째는 가장 긴 비유로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3명의 인물을 통해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비유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마지막 비유,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세상에 대한 모험심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둘째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하는 지루한 삶이 지겨워진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자신의 유산에 해당하는 몫을 미리 달라고 합니다. 자신의 꿈과 거창한 계획도 장황하게 설명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 허황된 꿈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지만 아들의 간청을 허락합니다. 아들은 가능한 먼 나라로 떠나갑니다. 아들은 재산을 낭비하며 방탕한 삶을 누립니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은 낯선 나라에서 온 아들을 반기며 아들의 돈을 이용해 방탕한 삶으로 유혹합니다. 둘째 아들이 정신을 차려보니 가져온 재산을 이미 다 탕진해 버렸습니다. 간신히 부탁하여 한 사람의 집에서 돼지를 치는 종살이를 시작합니다. 낯선 이방 땅에서 돈 한 푼 없는 둘째 아들을 주인은 거지 취급합니다. 주인은 아들을 돼지 우리에서 지내게 하며 음식도 넉넉하게 주지 않습니다. 아들은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려 하지만 그마저도 주인의 눈치가 보입니다. 이때 아버지의 집에 거하는 품꾼들을 떠올립니다. 그들은 종이라도 넉넉한 양식을 누립니다. 차라리 그들처럼 되는 것이 낫겠다 싶어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는 배고픔에 지친 몸을 일으켜 아버지의 집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으며 이렇게 결심합니다. “내가 죄를 지었으니 용서를 구하고 아버지의 품꾼이 되는 것이 낫겠다! 그래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자!” 아들은 자신의 죄를 후회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넉넉한 사랑을 그리워하며 집으로 향합니다. #2. Bible Story 2 : 아버지의 사랑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가 보입니다. 아버지를 보는 순간의 아들의 발걸음은 | *스토리텔링 기법 *본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이 다시 만나게 되는 장면이다. 이야기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메시지의 실마리만을 제공한다. | 느려집니다. 차라리 멈춰 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려옵니다. 그때까지 늙으신 아버지가 그토록 빨리 뛰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팔을 뻗어 가진 힘을 다해 아들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십니다. 이윽고 아버지의 눈물은 아들의 뺨을 적시고 가슴으로 흘러내립니다. 아버지는 흐느끼며 아들을 향해 말합니다. “아들아! 아들아!” 이 말에 아들은 벅차오르는 가슴을 억누르며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 합니다. “아버지! 제가 너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아들은 침착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소리쳐 외쳤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자신을 향해 달려오시고 손을 뻗어 힘차게 끌어안으시는 아버지의 벅찬 사랑에 때문에 침착할 수 없었습니다. #3. Bible Story 3 : 첫째 아들 | 설교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조명이 꺼지고 “Father” 영상. 영상을 통해서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서 느끼도록 합니다. 영상을 보여주고 난 이후에는 영상의 내용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하지 않습니다. 설명이 장황해 지면 영상의 특성상 영상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이 흐트러지게 됩니다. 다만 아이들이 영상의 이미지에만 지나치게 몰두하지 않도록 설교자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성경의 이야기에 빠져 들도록 흐름을 유지합니다. |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온 사실을 기뻐하며 큰 잔치를 벌입니다. 이때 첫째 아들은 밭에서 일 | *스토리텔링 기법 *본 이야기는 첫째 아들의 시점이다. 두 번째 아들과의 비교되는 모습을 통해 본문의 갈등을 표출시킨다. 첫째 아들의 이야기가 끝나면 영상을 통해 명확한 주제를 전달할 준비를 한다. | 을 하다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흥겨운 음악과 춤추는 소리에 의아해진 첫째 아들은 종을 불러내어 이유를 묻습니다. 지금까지 없었던 크고 흥겨운 잔치에 신이 난 종은 첫째 아들에게 동생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그런데 첫째 아들의 반응에 종은 당황합니다. 첫째 아들의 안색이 변하는 것입니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동생이 괘씸할 뿐입니다. 집안의 재산을 탕진한 동생이 밉습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잔치를 벌이시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집으로 들어오지 않는 첫째 아들을 찾아 나와 설득합니다. “애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하며 많은 것을 누려왔잖니?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난 것과 다름없다. 그러니 우리가 함께 즐기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니?” 그러나 첫째 아들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합니다. 사실 첫째 아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잔치가 벌어진 상황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3. Bible Story 4 : 두 번째 눈물 두 아들에 대한 가장 극명한 차이는 무엇입니까? 누가 더 큰 죄를 지었고, 누가 더 경건한 | *스토리텔링 기법 + 일반설교 기법 *스토리텔링의 톤을 유지하면서 본문의 의미를 해석해 나간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진정한 죄의 회개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반응이다. 앞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지속적으로 강조되어야 할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다. 그 사랑은 우리의 죄를 넉넉히 감싸 안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 모습으로 살았는지에 대한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했는지에 대한 차이입니다. 둘째 아들은 자비로운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죄악 된 자리를 떠나 종이라도 되고자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때 아들은 자신의 삶을 후회하며 아버지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아버지를 향해 지난 삶을 돌이켜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자신을 껴안은 아버지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맞대게 됩니다. 몰라보게 하얗게 변한 머리카락에서 자신을 기다린 아버지의 세월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종이 아니라 아들이라 칭하시는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때 둘째 아들은 다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합니다. 이때 회개는 죄악 된 삶의 결과를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으로 인한 반응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회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죄를 깨닫고 후회하는 것은 회개의 과정일 뿐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리고 죄에서 돌이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회개의 최종 결과입니다. 즉 회개란 아버지의 넉넉한 사랑의 품에 안긴 자녀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비유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돌아온 탕자의 비유’라고 이름을 붙여 불러왔습니다. 두 번째 아들을 방탕한 사람이라는 뜻인 탕자라 부르는 것은 적당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나 ‘돌아온 탕자’라는 제목은 이 이야기에 가장 어울리는 제목은 아닙니다. 이 비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받아들이는 아버지의 사랑에 있습니다. 이 비유에 대한 제목을 이렇게 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비유”(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결단의 시간으로 넘어간다) 이 이야기의 가장 극적인 장면을 묵상해 보겠습니다.(성경구절이 ppt를 통해 보이면서 암전이 되고 결단의 찬양 전주가 흘러나온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 누가복음 15장 20절 (찬양 전주가 흘러나오면서 설교자. 결단의 멘트) 우리의 삶에는 돌이켜야 할 죄악 된 모습이 없을까요? 오래된 습관처럼 여겨져서 죄인지도 인식하지 못했던 모습은 없었을까요? 굳어버린 화석처럼 습관적으로 저지르는 연약한 모습이 있다면 우리를 향해 달려오실 준비를 하고 계신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아버지 향해 온전히 돌아가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함께 찬양하며 회개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