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3장 16절, 요한복음 15장 13절
#1. 우리 앞에 놓인 최고의 사랑
여러분이 생각하는 최고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최고의 사랑’은 얼마 전 끝난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하죠. 이 드라마는 최고의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국민이 모두 사랑하는 ‘최고’로 멋진 사람과 사랑을 이루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대하는 최고의 사랑도 이와 같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듣게 될 최고의 사랑은 다릅니다.
이 영상은 실제로 있었던 일을 담은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경험할만한 상황 속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느끼게 해 줍니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어머니와 딸은 아버지를 찾아가다가 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자신이 가는 길이 정확 하다고 자만했기 때문에 더위에 고생하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가 내비게이션을 켜고 갔다면 이렇게 고생하지는 않았겠죠. 만약 영상 속에 등장한 어머니와 딸이 깊은 웅덩이가 아니라 낭떠러지로 향했다면 목숨을 잃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머니와 딸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차 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우리의 삶을 ‘길’이라고 생각해 보죠. 여러분들은 그 길을 정확하게 가고 있습니까? 인생길에는 내비게이션도 없습니다. 선택의 기로 앞에서 방향을 지시해 주는 기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지금 우리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끊어진 다리를 건너고 있다고 상상하면 끔찍하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이유가 우리를‘멸망’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주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멸망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길입니다. 우리가 모두 멸망을 향해 가고 있다니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멸망을 향해 가고 있다니요. 성경은 우리가 멸망의 향해 가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장 23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것은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분과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각자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영원한 죽음인 멸망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가 멸망해 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실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원래 죄가 있는 사람을 처형하던 가장 끔찍한 사형도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짊어져야 할 죄의 형벌을 대신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죽음을 향하는 멸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인‘영생’을 주셨습니다.
영상에 나온 아저씨를 보세요. 어머니와 딸을 대신해서 쏟아지는 태양 아래에서 어머니와 딸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정확한 길로 안내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이러한 호의를 그냥 지나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하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신 겁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의 크기를 아들을 내어주시면서 표현하셨던 거죠. 이 최고의 사랑이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그냥 지나치시겠습니까?
#2. 특별하지 않아도 받을 수 있는 사랑
우리는 모두 자신을 빛내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자신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이 멋지게 봐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특별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방금 우리가 만난 인물들을 보세요. 추구하는 모습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멋지게 봐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인정하고 부러워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합니다. 외모를 가꾸는 이유도, 공부를 하는 이유도, 춤을 추는 이유도, 운동하는 것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고 싶어서이죠. 여기서 잠깐 안타까운 소녀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여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민사고(민족사관고등학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 친구의 부모님은 신이 나서 여기 저기 전화를 했을 겁니다. 친척들에게, 옆집 아줌마들에게 자랑을 잔뜩 늘어놓았겠죠. 그런데 그날 밤 딸의 책상에는 한 장의 메모가 있었습니다. ‘엄마 됐지?’라는 짧은 메모였습니다. 이것이 딸의 마지막 유서였습니다. 이 짧은 메모만을 남기고 자살을 한 것입니다. 아마 이 친구는 엄마에게 보여주기 위해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친척들과 어머니의 친구들, 학교와 학원 선생님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다른 친구들과 경쟁하면서 성적을 올린 것이죠. 그래야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상황은 다르지만 여러분들도 이 친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어쩌면 무엇이라도 특출한 것이 있어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 거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에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장 13절)
친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목숨까지 버릴 정도로 사랑하는 친구라고 여기십니다. 우리에게 친구라는 존재는 나와 함께 마음을 나누고, 의리를 지켜 서로를 배신하지 않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과의 의리를 지키지 않고 배신한 사람들뿐 아니라 모두가 외면한 죄인들에게도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사랑으로 여러분을 친구로 여기십니다. 그리고 친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겁니다. 그 사랑이 세상에 있지 않는 가장 ‘큰 사랑’입니다.
#3. 결단과 적용의 시간
(‘결단의 찬양-찬양콘티 참조’-을 부르며) 사랑하는 친구가 여러분을 이곳으로 인도한 것도, 제가 여기에서 설교를 한 것도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주신 그 최고의 사랑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안타까운 눈빛으로 손을 뻗고 계십니다. 지금 그 손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 애타는 마음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