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도는 보이는 것이다?
| 전도를 어렵고 낯설게 생각하는 친구들의 고민에 답하는 구성입니다. ‘와서 보라’라는 말은 단순히 교회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대해서 강조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기쁨의 ‘외침’이며 ‘증언’입니다. 이를 위해 나다나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메시지를 이어갑니다. |
인터뷰를 통해 전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생각을 했습니까? 이 사람들처럼 전도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나요? 전도 이야기를 꺼내면 어려운 수학문제를 만난 것처럼 긴장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어려운 수학문제를 만나면 그냥 ‘패스’를 외치는 것처럼 전도도 너무 어려워서 ‘패스’해 버리는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학에 재능이 있는 친구들이 문제를 잘 푸는 것처럼 전도도 특별한 은사가 있는 친구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말 전도가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최초의 전도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제자들이 전도를 받아 예수님께 나오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전도할 때에도 “이번 주에 교회 와 볼래?”처럼 ‘보라’라는 말을 자주 사용할 겁니다. 이때 ‘와 봐’는 와서 ‘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도는 ‘데리고’ 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는’것이 중요합니다. 이때‘보다’라는 말은 단순히 눈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닌 알게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머리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바타>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그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 무엇입니까? 저는 ‘I see you’라는 대사입니다. 서로의 모습만을 보았을 때는 ‘전쟁’의 대상이었지만 서로를 경험한 후 마음으로 보게 되었을 때에는 ‘사랑’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경험이 있을 겁니다. 머리로 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알고 있지 않나요? 그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타면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지난 주말에 본 예능 프로그램의 내용을 친구들과 함께 수다 떨지 않습니까? 친구와 대화할 때 사용하는 화제의 대부분은 보고 경험한 감동적이고 재미있었던 것들입니다.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신이 나서 떠들게 됩니다. 전도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미가 5장 2절)
본문에서 빌립이 나다나엘을 부르는 장면을 보시기 바랍니다. 전도를 하는 빌립의 말에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나다나엘이 나사렛을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구약의 예언을 보면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라 예언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의 말씀을 들어 논쟁을 걸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은 논쟁 대신에 ‘와서 보라(Come and see)’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경험해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빌립은 마음으로 알게 된 예수님에 대한 감동을 나다나엘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전도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내 삶의 가장 큰 기쁨과 희열인 예수님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친구들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복음의 교리보다 여러분의 모습을 통해 예수님을 알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2. 우리의 ‘고함’
전도는 ‘개인’이 아니라 ‘함께’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이를 위해 안드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설교합니다.
요한에게 예수님을 소개받은 안드레는 베드로를 전도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빌립은 나다나엘을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도를 받은 베드로와 나다나엘은 계속해서 전도의 사역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는 전도는 릴레이 경주와 같습니다. 그 누구도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품은 모든 비전의 궁극적인 목적은 ‘부흥’입니다. 그 ‘부흥’은 전도를 통해서만 일어나게 됩니다. 초대교회가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함께 전도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면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었던 초대교회의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전도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가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함께 복음을 위해 힘쓴다는 사실만으로 서로에게 용기가 되고,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디모데후서 4장 2절)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시몬을 처음보고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는 초대교회의 든든한 ‘반석’이 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초대교회에서 복음 전도에 대활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를 인도한 사람은 ‘안드레’입니다. 안드레는 베드로와 달리 복음서에서 이름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듭니다. 베드로가 주인공이라면 안드레는 단역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안드레가 전도하지 않았다면 베드로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전도를 얼마나 크게 사용하실지 모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우리 모두가 함께 전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 전도의 결실이 없는 것처럼 보여 지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에 대한 열정은 반드시 결실을 맺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의 이야기를 알고 있나요? 이때 토마스 선교사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즉결 처형을 당했습니다. 이때 토마스 선교사의 목을 친 사람이 ‘박춘권’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죽기 전에 성경책 한 권을 ‘박춘권’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훗날 박춘권은 장로님이 됩니다.
전도의 결과는 누구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의 열정은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함께 품은 열정은 가치는 모두 동일하게 소중합니다. 이 시대의 부흥을 위해서 우리는 모두가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