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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나타난 기독교 역사왜곡(full 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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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일201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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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ll 영상 및 편집영상+본문해설+설교예시문+찬양콘티+BIBLE SCAN(공과학생용/교사용)+PPT 파일

                                 [Full 영상 25분]

     

    국사교과서에 나타난 기독교 역사문제 바로 알기

     

    본문: 여호수아 4장 5~7절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을 밟기 위해 요단강을 건너야만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에게 요단강에 발을 먼저 내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요단강의 물살이 멈추고 마른 땅이 드러났습니다. 사람들은 이 마른 땅으로 변한 요단강을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지나가던 행렬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거운 돌을 한 개씩 어깨에 메라고 하십니다. 왜였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평범한 돌들을 보며 요단강의 건넌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역사 공부는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기독교의 역사를 어떻게 공부하고 있습니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국기독교의 역사인식에 대해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먼저 ‘국내에 기독교가 전래된 시기가 언제냐?’란 질문에 대답한 학생은 2.7%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근.현대사에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어떠한 일을 했나?’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70%정도의 학생들이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인식은 현재의 기독교를 이해하는데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민간의 사회복지 활동 중 몇 퍼센트를 담당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90%에 가까운 학생들이 실제보다 낮게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청소년들의 역사인식은 우리가 배우는 국사교과서에도 원인이 있습니다. 과연 어떤 문제일까요?

    첫 번째로는 현재의 교과서는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해합니다.

    교과서 중에는 이렇게 기술된 부분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서양 종교의 이념은 전통적인 가치관과 충돌하여 민중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기독교가 조선시대의 사람들과 크게 충돌하고 갈등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가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조상숭배나 신분계급의 유교적 가치관과 충돌한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평등사상을 가지고 신분을 따지지 않고 선교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평민이나 천민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민중들이나 소외된 계층들에게는 더욱 크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기록된 부분도 있습니다. ‘기독교는 지나치게 복음주의를 강조하여 제국주의 열강과 일제의 침략을 옹호하기도 하였다’ 이 말은 마치 기독교가 일본의 침략을 도운 것처럼 오해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복음주의’란 용어는 18세기에 일어난 부흥운동에서 생긴 말입니다. 이때에는 국가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개인에게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히려 초기의 선교사들은 105인 사건과 3.1운동을 통해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국제 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두 번째로 살펴 볼 것은 기독교를 다른 종교에 비해 불평등하게 기술면서 기독교의 역할을 축소하거나 언급조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재 8개의 출판사 중에 6개가 한국을 불교국가로, 나머지 2개는 다종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설명한다면 한국은 다종교의 사회가 맞습니다. 각 출판사의 기독교 기술의 분량은 400페이지 중 2p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교, 유교, 천도교에 대해서는 한국 역사에 어떠한 영향력을 끼쳤는지 자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본다면 3.1운동을 천도교(동학)이 주도했다고 말하면서 기독교의 역할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민족대표 33인 중에 16명이 기독교인이며 수감자의 숫자도 기독교인 1,983으로 가장 많은데도 말입니다. 이는 분명히 편향된 역사서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학이나 의병활동 고대나 중세, 근세의 유.불교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기술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기독교에 대해서는 종교의 전래시기조차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종교 서술에 대해 의구심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청소년들은 역사교과서를 통해서 자신들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데 비해 기독교인 청소년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과거 불교나 유교가 각각 그 시대의 선진문명을 들여와서 한국문화 발전에 기여한 것처럼 기독교도 서구의 근대 사회를 한국에 소개하여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만드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습니다. 한국의 긴 역사를 살펴보면 지난 세기만큼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적은 없었으며 그 중심에는 기독교가 있었습니다.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강조되고,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강조되는 것처럼 개항 이후에는 당연 기독교를 중요하게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기독교가 한국의 근대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행하신 일들을 알아가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가 근대사회에 끼친 영향들은 이렇습니다.

     

    첫째로, 기독교는 일제의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건국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입니다. 먼저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데에는 기독교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당시 기독교는 전국적인 조직을 가지고 있었는데 3.1운동은 이 조직을 통하여 전국으로 확산되어 갔습니다. 민주주의를 이루어가는 통로가 되었던 ‘독립협회’의 핵심인물인 윤치호, 서재필, 남궁억, 이상재, 주시경, 이승만이 모두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지도자들이 기독교적 이상으로 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기독교가 평등하고 도덕적인 사회를 이끌어 갈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은 ‘경찰서 10개를 세우는 것보다 교회 하나를 세우는 것이 낫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이밖에도 신사참배 거부운동과 미국, 만주, 상해를 중심으로 한 해외의 교회를 통한 독립운동도 중요하게 평가 받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의료시설과 학교를 세워 한국의 근대화를 가져왔습니다. 당시에는 평균수명이 40세에 불과했고 영유아 사망률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는 의학 전파에 주도적인 역할을 합니다. 선교사 알렌은 1885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병원인 광혜원을 설립하고 의료기술을 교육하는데도 힘썼습니다. 그 결과로 1913년까지 33개의 기독교 선교병원과 여성들과 나병환자들만을 위한 의료기관을 세우게 됩니다. 현재 국사교과서는 근대교육에 있어 원산학사만을 자세하게 설명하지만 개신교가 미친 영향은 더욱 중요합니다. 학교를 전국에 걸쳐서 확산시켰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높은 시민의식을 갖는데 공헌합니다. 먼저 신분제타파의 기폭제역할을 합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백정해방운동’을 주도하게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관리들의 부정부패 앞장서왔는데, 기독교 발전한 마을에는 지방수령들이 부임하지 않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일을 싫어한다!’ 이 말은 19세기말 조선을 방문한 여행가들의 공통적인 견해였습니다. 유교 사회에서는 상업을 천시하며, 노동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기독교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 번째 날 쉬라는 십계명을 강조하면서 노동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나라의 기틀을 만들어냅니다. 또한 많이 알려져 있는 물산장려운동을 주도한 조만식이 기독교 장로였고 교회를 통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여성운동에도 교회가 중심에 있었습니다. 교회는 여성들을 위해 야간학교와 수많은 여성단체를 만들어 예성계명운동을 넓혀갔습니다. 특히 일부다처제를 타파하는 것과 독립운동에 여성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교회의 역할이었습니다.

     

    네 번째로 한글보급에 지대한 공헌을 합니다. 게일 선교사는 한글의 우수성에 놀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바 있습니다.

    ‘한글은 세상에서 가장 간소한 글자이다. 그것은 허구한 세월을 먼지에 뒤덮여 사람 눈에 띄지 않은 채 무언가를 기다리며 지내왔다. 그것은 배우기가 너무 쉬워 결코 쓰여지지 않았고, 멸시당했다. 그것은 오래 동안 기다리다 놀라운 섭리에 의해 성서와 그 외 문서로 받아 쓰여지게 되었다.’

    이처럼 실제생활에서는 한글보다는 한문이 더욱 우선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선교사들은 한글의 우수성을 알고 한글 성경, 찬송가, 신문을 발간하며 한글 서적과 인쇄매체의 발전을 가져오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발전에 공헌하였습니다. 서양음악이 최초로 소개된 것은 찬송가 때문이었습니다. 기독교계 학교에서는 찬송가를 통해 음악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이때 많은 악기들이 한국에 보급됩니다. 기독교는 문학에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기독교문학이 한글로 번역되면서 번역문학이 발전하였고 기독교 세계관은 우리 문학의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1906년에 나온 ‘금수회의록’은 부패한 정치와 사회 문화를 비판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통한 구원을 담고 있습니다. 1911년 출간된 ‘부부의 모본’은 기독교결혼관을 실천하는 부부의 이야기였습니다. 이후 전영택, 염상섭, 심훈, 황순원, 윤동주, 김현승, 박두진, 박목월등의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가들이 기독교적 세계관을 표현하며 한국 문학의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기독교교육기관에서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기독교 인물들이 조각상으로 표현되고, 고딕양식의 교회당이 세워지면서 근현대 미술과 건축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기독교는 스포츠 종목의 도입과 활성에도 크게 이바지합니다. 기독교학교는 야구, 축구, 농구와 같은 서양식 운동경기를 실시했습니다. 이중에서 질레트 선교사가 1905년 YMCA를 통해 야구를 보급한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유명합니다.

    이처럼 근대사회에서 기독교는 잘못된 문화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일제의 탄압 앞에서는 민족을 대표하여 희생하고 헌신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억하고 이어가야 할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실천은 다시 다음세대를 향한 역사가 되어 이 땅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로 기억될 것입니다